[진격의 K-방산] 시속 70km 질주, 360도 회전..폴란드로 떠날 'K2' 위풍당당

김나윤 입력 2022. 9. 24. 01:28 수정 2022. 9. 24.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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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폴란드 수출을 앞둔 K2 전차가 지난 21일 경남 창원시 현대로템 성능 시험장에서 시속 70㎞로 달리며 막바지 주행 테스트를 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전차들이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하길 바랄 뿐입니다. 이 단계만 지나면 사실상 폴란드행 배에 선적할 일만 남았거든요.”

지난 16일 경남 창원시 현대로템 생산공장. K2 흑표 전차 주행 테스트를 지켜보는 김미정 책임매니저의 표정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K2 전차들이 성능 시험장에 차례차례 들어설 때도 두 손을 모으고 무사통과를 기원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수년째 K2 전차를 눈앞에서 지켜봤지만 지금 성능 시험 중인 전차는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 기업뿐 아니라 한국의 첫 수출 전차라는 점에서 K-방산의 새 이정표를 쓰고 있는 현장”이라며 뿌듯해했다.

폴란드와 K2 1000대 수출 계약

K2 전차는 현대로템이 2003년 개발에 돌입해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한 3.5세대 최신 전투 차량이다. 1차(100대)·2차(106대)·3차(54대) 모두 국군에 납품돼 우리 군의 기동로 확보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더 나아가 지난 7월엔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1000대 수출 기본 계약을 맺으며 해외에서도 당당히 성능을 인정받았다. 1차 인도분만 4조5000억원어치에 달하는 ‘잭팟’ 계약이었다.

이날 창원공장은 삼엄한 보안 속에서 곧 폴란드로 떠날 K2 전차 생산의 막바지 작업에 분주했다. 현대로템이 폴란드 수출용 K2 전차 조립과 성능 시험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성능 시험은 출고 임박을 알리는 최종 점검 단계에 속해 최고의 보안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해외로 먼 길을 떠나기 전 ‘친정’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지막 종합 신체검사를 하는 셈이었다.

야외 주행장에서 출발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리자 55t짜리 K2 전차가 엄청난 주행 소음과 함께 최대 시속 70㎞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차의 쾌속 질주는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압도했다. 포탑의 360도 회전 묘기도 빠지지 않았다. 길이 10.8m, 폭 3.6m로 여느 전차 못지않은 웅장함을 자랑하면서도 경사도를 지나갈 땐 승용차처럼 부드러운 코너링을 선보이며 시험을 단번에 통과했다.

경남 창원시 현대로템 생산공장 내 잠수도하시험장. K2 전차는 수심 4.1m 물속도 고장 없이 전진하는 능력을 갖췄다. 최영재 기자
다른 시험장도 K2 전차들의 엔진 소리로 가득 찼다. 전차의 핵심 공격력을 점검하는 실내 포격장도 포 발사와 화력 등 점검에 한창이었다. 야외 주행장 옆에 마련된 도하 시험장에선 전차가 수심 4.1m 물에 잠긴 채 물살을 가르며 운행하고 있었다. K2 전차의 강점 중 하나인 잠수도하 장치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국지호 현대로템 전차 체계 종합설계 연구원은 “K2는 잠수도하 능력이 공격 기능 못지않게 중요하다 보니 초기 개발 단계부터 숱한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며 “시험 도중 전차가 물속에 잠긴 채 시동이 꺼져 내부 침수 등 비상 상황으로 이어질 뻔한 적도 있었는데, 당시 재시동이 걸리기까지 1~2분간의 정적은 마치 10시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현대로템이 국내에서 전차를 완제품으로 생산해 수출하는 것은 우리 군 무기 수출 사례 중 최초다. K2 전차의 수출 행보에 국내외 방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지난달 폴란드와 1차 이행 계약까지 성사시킨 현대로템은 현재 1차 인도분 전차 180대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일찌감치 완성된 시제품들은 국방기술품질원 감독관들 참관하에 각종 성능 점검을 거치고 있다. 테스트 항목만 200여 개나 된다. 무기 특성상 모든 기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정상 운용이 가능한 만큼 사소한 부분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공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외 수주 계약으로 일감이 늘면서 생산 현장도 크게 고무된 분위기였다. 용접·가공·조립 등 각 시설동은 가동을 멈춘 곳 없이 작업장 불을 일제히 밝히고 부품을 실어나르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일렬로 늘어선 컨베이어 벨트에도 전차 물량이 빈틈없이 자리 잡으며 작업자들의 손길이 닿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로템은 국내외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재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엔 대규모 특별 채용 공고를 내고 신입·경력 사원을 동시 다발적으로 충원하고 나섰다. 방산 기술뿐 아니라 품질 관리, 해외사업 전략 등 분야를 망라해 직원 채용에 나선 건 방산업계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란 분석이다. 현지에선 K2 전차와 연관된 1·2차 협력업체가 1000개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야전 주력 전차라는 명성에 걸맞게 K2 전차의 성능은 오랜 라이벌인 독일의 레오파르트 2A7 전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독일제 전차보다 충격 흡수 능력이 뛰어난 유기압 현수 장치를 탑재해 이동 중 사격 명중률을 높이고 승조원의 피로도 또한 크게 낮췄다. 자체 방호 능력도 눈길을 끈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사전 감지해 피하는 동시에 대응탄을 발사해 무기를 타격하는 게 가능하다.

미래전 대비 무인 포탑 등 개발 나서

K2 전차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만 지나온 것은 아니었다. 1995년 노후화한 기존 전차를 대체할 목적으로 K2 전차 개발 사업이 시작됐지만 전차의 핵심 장치들에서 결함이 잇따라 발견되며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2009년엔 엔진, 이듬해엔 변속기에서 결함이 드러났다. 이 같은 우여곡절로 인해 1차 양산 전차는 독일산 장치를 장착해 전력화했지만 2차 양산은 결국 중단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끝내 보완에 성공하며 2019년 2차 양산에 본격 돌입하게 됐다.

현대로템은 이번 K2 전차의 첫 수출을 계기로 전차 전력화에 적극적인 중동과 독일 무기의 안방인 유럽에도 국산 전차 수출을 적극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중동 최대 규모의 국제방산전시회에서는 ‘중동형 K2 전차’가 사막 환경에 최적화된 기능을 선보이며 현지 관계자들의 큰 이목을 끌기도 했다. 최근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정부가 K2 전차에 관심이 높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K2 연구진들은 지금의 기술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미래전에 대비한 기동 체계 개발에도 적극 나설 태세다. 국 연구원은 “차세대 전차의 핵심 기술은 기동력 향상과 130㎜ 무인 포탑, 생존력을 끌어올리는 방호 능력 등이 될 것”이라며 “미국과 독일 등 주요 방산 수출국도 이미 개발에 뛰어든 만큼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역량을 집중해 K-방산의 기세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원=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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